(Khuddaka Nikāya(소부), Khuddaka pāṭha pāḷi, 제7경)
죽은 이들은(죽은 후 아귀로 태어난 이들은) 자신의 집으로 와서 담장 밖이나 벽이나 집의 세 갈래나 네 갈래로 갈라진 틈에 서 있거나 문기둥에 의지해서 서 있습니다.
하지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씹을 것과 삼킬 것을
친지들이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들의 악업 때문에 아무도 그 죽은 이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죽은 이를 연민하는 이라면
‘이 공덕이 죽은 친척들에게 나누어지기를!’,
‘죽은 친척들이 행복하기를!’ 이라고 하면서
깨끗하고 훌륭하고 공양 올릴 만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적당한 시간에 보시합니다.
그 곳에 이른 죽은 친척들도 그 자리에 모여들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많이 보시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두(善財)’를 부르며
다음과 같이 기뻐합니다.
“그들 때문에 이러한 것을 얻었습니다.
살아 있는 친척들이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에게도 공양을 올렸고 자신들도
큰 결실을 얻었습니다.”
사실 죽은 이들이 사는 곳에는 농사도 없고 목축도
찾아볼 수 없고 돈으로 장사하는 것도 없고 무역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 곳의 죽은 이들은 오직 이 곳에서 보시한 것만으로
살아갑니다. 높은 곳에 내린 빗물이 아래로 흘러가듯이
이곳에서 보시한 것이 죽은 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마치 흘러 들어오는 냇물로 넘치는 강물이 바다를 가득 채우듯이 이곳에서 보시한 것이 죽은 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줍니다.
“그들은 나에게 이것을 주었고 이것을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나의 친척이고 친구이고 동료였습니다.” 라고 죽은 이들이 이전에 해주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죽은 이들을 위해 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울며 슬퍼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더라도
그 죽은 이들에게는 아무 이익이 없는데도 남은 친척들은 그렇게 지냅니다.
거룩한 스님들(僧伽)께 올린 공양은 오랫동안 복덕이 되고 즉시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는 친척으로서의 해야 할 도리도 한 것이고 죽은 이들을 위해 뛰어난 공양도 행한 것이고 수행승들에게 힘도 선사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들은 적지 않은 공덕을 실천한 것입니다.